사는 이야기

아침일기 3

꽃내음yu 2023. 5. 18.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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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날씨치고 너무나 무더웠던 요즘이었다.

그리고 내리쬐는 태양이 너무 뜨거워 그늘만 찾아다녔다.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그래서 아침은 여름날의 아침처럼 습하고 덥다고 느껴지는 아침.

비가 내리는걸 참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비 내리는 소리도

비가 내릴 때 나는 향도

그 시원함까지

그러다 어느 날부터 비가 조금씩 거추장스러워졌다.

운전을 시작하면서

출근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를 낳으면서 

등등....

수많은 걱정들이 생겨 나면서 비도 눈도 반갑지 않아 졌다.

오늘 아침도 흐린 하늘을 바라보다 머릿속에선 오늘의 스케줄부터 떠오르기 시작했다.

외부 일정이 있던가..

운전하고 나가야 는데...

아침엔 적게 내리면 좋겠다

아이들 옷은 어떻게 골라줘야 할까

엄마네 집에 비가 샌다던데 괜찮으려나...

습하니 집에 제습기를 틀어놓고 가야나...

순식간에 스쳐가는 수많은 생각들을 인식하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마터면 이 좋은 아침 시간에 걱정더미에 묻혀 있을 뻔했다.

내가 나의 생각을 바라본다는 건 재밌는 일이다.

마치 제삼자를 바라보듯 나의 생각을 바라본다.

격한 감정이 일어날 때도 마찬가지다 그 감정에 파묻히지 말고 한 걸음 떨어져 나와 나를 바라보면 답이 보인다.

답이 보이지 않아도 그 감정에 파묻혀 저지를 실수는 막을 수 있다.

비 내리는 날을 확인하고 한쪽으로 미뤄 뒀던 커피원두를 찾았다.

얼마 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며(어느 나라였더라... 기억이... 동남 안데...) 선물로 주신 커피를 이제야 개봉해 보았다.

오랜만에 드립으로 내려먹을 생각에 살짝 설렜다.

늘 커피 머신으로 커피를 내려 아침을 시작한다.

그런데 오늘 비가 내리는 기념(?)으로 조금 정성을 들이기로 했다.

어떤 향일지도 모르는 미완의 커피를 조심히 내렸다.

원두에서 나는 고소한 향이 맘에 들었다.

나를 위해 내가 쓰는 그 잠깐의 시간도 행복했다.

가끔은 아침엔 이런 여유를 부리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다.

맘에 드는 커피숍에 갈 때면 그곳 원두를 사는 걸 좋아했었다.

그리고 집에서 나에게 맞게 내려 마시는 것도 말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커피머신에 밀려 나의 바쁨에 밀려 집에 더 이상 원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렇게 바빴을까 하는 후회대신

좋아하는 것도 미룬 채 참 열심히 살았구나 하고 나를 위로해 본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다시 이런 여유가 생겨 감사하다라고 생각해 본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열어둔 창문을 통해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잠시 눈을 감고 그 바람을 온전히 느껴본다..

바람에 실려 오는 비 냄새에 살짝 설렌다.

불과 20분 후면

7시가 되면 12시면 되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아이들을 챙기고 출근을 하며 수많은 걱정을 시작할 것이다.

우산은 잘 챙겨라 조심히 걸어 다녀라

준비물을 다 챙긴 거니

그리고 운전할 때도 출근해서도

그래도 지금 7시가 되기 전까진.... 나의 알람이 울리기 전까진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 이 20분을 걱정한다 해도 비는 내릴 것이고

지금 걱정하지 않아도 나는 그동안 해온 패턴대로 해결할 일들이니까

그리고 눈앞으로 와야 해결 가능 한 일들이니까

지금은 날씨의 변화를 걱정대신 설렘으로 바라보던 그 시절처럼

빗소리도 바람내음도 

부드러운 커피의 맛도 즐겨보려 한다.

 

(감사

비내음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

선물 주신 원두로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어서 감사

비 내리는 습한 날에 틀어 둘 제습기를 보유할 수 있어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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