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커피에 앞서 단백질 쉐이크(?)로 아침을 시작했다.
커피를 내리기 전 신랑과 아들을 위해 사놨던 단백질을 타면서 그래도 아프긴 싫은가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어젠 이침을 배우는 지인 분을 다른 이침을 하시는 분과 함께 만났다.
그 지인분이 이침을 배우면서 귀를 보여주는 일이 늘었고,
이번에도 귀를 살펴보며 건강상태를 염려 해 주셨고
귀에 침도 놔 주셨다.
신기하게도 만날때마다 나의 상태에 따라 조금씩 귀에 다르게 나타나나 보다.
그리고 같은 귀를 보더라도 역시 잘보는 분과 배우는 분은 차이가 있는게 들어났다.
귀를 보며 한 사람의 건강상태를 파악한다는것
신기하기도 하고 배우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결국 모든 건 무언가를 읽어내는 것 즉 찾아내고 알아낸 것을 상대에게 잘 알려 주는 것이다.
내가 하는 영업도
상대방이 원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내야 잘 하는 것이고
결국 잘 사는 것 역시 내가 날 잘 알아야하는 것이다.
요즘 글을 쓰고 5분 10분씩 남는 시간에 읽던 책이 있다
'세상 끝의 카페'
라는 작고 얇은 책이다.
그 책에선 질문을 던지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배우는 뇌교육에서는
나의 몸 상태와 변화를 잘 아는 것이 첫 단계라고 말한다. 즉 나를 인식하는것 말이다..
다르게 표현되는 모든 말들이 모든 일들이
결국 하나로 모인다.
나를 얼마나 잘 읽어낼수 있는지
세상을 얼마나 잘 읽어낼수 있는지
무언갈 관찰하고 알아내는 일이 결국 잘 살게 되는 방법일까
그럼 난 무엇을 잘 알아내고 잘 읽어내서 잘 전달하면 되는 것일까
세상을 읽는 눈이 있는 사람들의 세상의 변화를 알려준다
다른 이의 건강상태를 잘 읽어내는 사람은 다른이의 건강을 걱정해준다
다른이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사람은 그들을 위로 해준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아내 살아간다.
그래서 우린 무언가의 전문가를 찾는다.
잘 읽어내는 사람 말이다.
그럼 난?
무엇을 배워가고 있으며 무엇을 잘 읽어내고 있을까?
내 몸의 변화 그리고 움직임을 하나하나 인식해보는 것에서 시작해볼까?
유치원에서 배우는 모든 것이 삶의 기본이다.
유치원에선 나로부터 시작해 범위를 넓혀가며 세상을 알게 한다.
우리도 나부터 시작해보는건 어떨까?